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국가상징 알아보기

이달의 재외동포

이달의 재외동포

이달의 재외동포(6월) - 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박병헌 단장
작성자 : 재외동포정책과 작성일 : 2025-06-16 조회수 : 180

박병헌 

(1928.7. ~ 2011.3.)

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

 


1928경남 함양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박병헌은 1939년 12살이 되던 해 형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일제강점기의 억압 속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다른 언어와 생활에 적응한다는 수준이 아니었다정체성을 지키고민족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었다.


그는 도쿄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후 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전문학교를 다녔다해방 직후재일동포 청년 단체였던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활동을 시작으로 민족운동의 길에 들어섰다이 선택은 곧 그를 재일동포 사회 리더의 자리로 이끄는 분수령이 됐다.


  • 1.조국을 지키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전선으로



1950년 6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박병헌 단장은 22살의 대학생이었다메이지대학에 재학 중이던 그는 고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구국전선에 동참하기 위한 의용군 창설 추진위원이 되어 재일한교(韓僑)학도의용군’ 결성에 동참했고본인도 기꺼이 자원병에 지원했다그렇게 그는 재일학도의용군’ 1진 78명 가운데 한명으로 참전했다.

 


그가 처음 투입된 전투는 인천상륙작전미 제1해병단과 제7보병사단이 속한 제10군단에 배속됐다학도의용군이 끈질기게 전선 배치를 요구하자 미군은 부대 편제에 없는 ‘3.1독립보병부대를 만들어 수용했지만 1950년 11월 중공군이 참전하자 연합군이 후방철수로 작전을 바꾸면서 해체됐다.



부대 해산은 곧 철수를 의미했지만 박 단장은 철수를 거부하고 당시 위관급 장교가 많이 부족했던 한국군 육군본부로부터 간부후보생 선발시험에 응시하라는 제안을 받고 시험에 합격해 육군 소위로 임관과 동시에 전투에 참여한다특히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전선을 안정시킨 계기가 된 용문산전투에서 소대장을 맡아 활약했다.

 


 


1951년 한국전 참전 중 고향에서

어머니와 상봉한 박병헌 단장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 총 642명 중 전사 52행방불명 83명 등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는 이후 재일민단 부단장 시절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자 위원으로 참여해 1979년 인천 수봉공원에 기념비를 건립에 동참하였고, 훗날 민단 중앙단장에 오른 뒤에는 참전동지 및 단원들과 힘을 합쳐 일본의 민단 중앙회관 앞에도 기념비를 세웠다.

 



1979년 인천 수봉공원에 건립된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박병헌 단장


979년 인천 수봉공원에 건립된 재일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박병헌 단장





 

2. 재일동포사회의 리더로서 조국 발전 선도


박병헌은 이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핵심 인물이 됐다그가 총무국장이던 1970년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엑스포가 개최됐다민단은 재일한국인만국박람회후원회를 구성해 모금 운동 등 ‘EXPO 70’ 지원 사업을 전개했고박병헌 단장은 후원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지원사업의 기획과 진행에 이바지했다모금 운동에는 많은 재일동포가 호응해 모금 목표액 50만 달러를 넘어 한국관을 건립하고도 돈이 남을 정도인 70만 달러를 모금하는데 성공했다모금 운동 외에도 모국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본국가족 초청사업을 병행해 박람회 기간 중 6차례, 총 9천 710명의 인원을 초청하기도 했다본국에서 별도로 다녀간 가족까지 보태면 총 1만 2천명이 넘는 인원이 일본을 방문했다.


1981년 9월 제24회 하계 올림픽의 서울 개최가 확정되자 민단을 중심으로 전 재일동포를 망라한 서울올림픽재일한국인후원회를 결성했다서울올림픽 후원의 관건은 기부금이었으나 큰 액수의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기부금 전액 면세 지정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그는 한일의 정관계 인사를 거듭 찾아가 면세 교섭을 벌이고진정단을 만들어 일본 관료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이어진 교섭 활동 끝에 그는 1986년 일본 정부 대장성(大藏省)의 대신을 면담하는 등 일본의 기부금 면세 조치를 이끌어내는 데 역할을 했다. 면세 효과로 기부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525억원의 거액이 모였고이 기부금은 조직위에 기탁돼 올림픽 체조경기장수영경기장테니스경기장올림픽파크텔 등 조성에 쓰이며 88올림픽 성공 개최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외 한민족의 대동단결과 재외동포 간의 정보교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단장 시절인 1987년 해외한민족대표자회의를 제창하고각국 재외동포사회에 개최 제의서를 발송했다.


이 제의서는 각 재외공관의 협조를 얻어 전 세계 동포사회에 전달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이에 제1회 해외한민족대표자회의는 공산권 지역을 제외한 미국캐나다유럽남미동남아 등 31개국, 303명의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1987년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이는 현재의 세계한인회장대회의 모태가돼 전 재외동포 사회의 발전을 위한 의사결집의 장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역할을 하고 있다.






1987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제1회 해외한민족대표자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박병헌 단장



3. 모국의 고향 발전을 위한 기부와 후원



그는 비단 민단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고향 함양군 백전면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에 앞장섰다.



1981년 사재 3천만원을 기탁해 함양군에 운암장학회를 설립했고, 395명의 학생에게 총 39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또 2005~2006년에는 백전초등학교 학습기자재 4천만원을 기부했고매년 수학여행 경비 4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지역 인재 육성과 학업 

증진에도 앞장섰다.


987년에는 함양군 발전을 위해 벚나무 12천 그루를 기증했고기증된 벚나무는 함양군 수동면에서 백전면까지 16km에 이르는 백운산 자락에 식재돼 오늘날 많은 관람객이 찾는 백운산 벚꽃축제로 발전했다박 전 단장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이 벚꽃축제에 총 4천만원을 내놓기도했다.





1987년 박병헌 단장이 기증한 벚나무 12,000그루가 식재되어

매년 봄 벚꽃축제가 열리는 백운산 자락 전경

(출처 함양군청)



그밖에 1988년 백전면 망월정공원 조성을 위한 부지 제공 및 2천만원 기부, 2006년 백전공원 조성을 위해 3천만원백전동산공원 조성을 위해 조경사업비 2억원 기부 등 고향 발전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아낌 없는 고향 사랑을 높이 산 지역 주민들은 그의 모교인 백전초등학교로 향하는 언덕길에 박병헌 공적비(功績碑)’를 세워 그의 행적과 공헌을 기리고 있다.

 



4. 재일동포 기업인으로서 조국 산업화 기여


박 단장은 모국 땅에 경제인으로서도 한획을 그었다바로 1967년 세워진 한국 최초의 수출산업단지 구로공단에서였다구로공단은 재일동포들에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역사의 현장이자모국 투자를 향한 열정과 땀이 맺혀 있는 곳이었다.


일본에서 전자회사를 경영하던 다섯째 형과 함께 1973년 구로공단에 전자 부품회사 대성전기를 세웠다당시 기술적으로 크게 앞서 있던 일본 기업과의 기술제휴를 성사시키고 미국 등 경제 강국과의 산업 가교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산업화에 일조했다그러한 공로로 우리 정부로부터 산업훈장도 수차례 수훈했다.



1970년대 후반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 설립과 1980년대 초 신한은행 설립에도 참여했던 그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한국복지재단중앙대학교 이사 등으로 활약하며 조국을 위한 다방면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공적을 기려 우리 정부는 1975년 보국훈장 삼일장, 1979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9년 체육훈장 청룡장, 1994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그에게 수여한 바 있다.




이 표는 이전글, 다음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다음글

이달의 재외동포(7월) - 전 사할린억류귀환한국인회 박노학 회장

이전글

이달의 재외동포(5월) - 독립운동가 임천택 지사

담당부서 : 재외동포정책과

전화번호
032-585-3161

페이지 만족도

홈페이지의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하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