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택 (1903.3 ~ 1985.9.) | 임천택은 1903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2살 때인 1905년 어머니 등에 업혀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이민했다. 멕시코 에네켄(용설란(龍舌蘭)과의 식물) 농장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18살때인 1921년 멕시코 혁명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하자 300여 명의 한인과 함께 쿠바로 다시 이주했다. 이후 쿠바 마탄사스 지역에 정착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에 헌신했다. |
1. 대한인국민회 등 독립운동 단체 활동
1921년 쿠바 주재 일본 영사관이 한인들에게 일본인으로 재외국민 등록을 요구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에서 서기로 활동을 시작하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이후 총무, 회장, 고문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국민회 활동을 이끌었고, 193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접촉해 독립운동 자금 제공과 쿠바 한인 소식 전파에 나섰다.
특히 1941년 진주만 사건이 터지자 한인의 광복 의지 및 일본인들과의 차별성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기 위해 쿠바 내 3개 국민회 지방회를 대표하는 11인 중 한 명으로 ‘재큐한족연합외교회’ 결성을 주도했고, 1943년에는 3개 지방회를 통합한 ‘재큐한족단’을 창립해 조국 독립을 위한 조직적 활동을 강화했다. 또 독립자금 모금, 국제 선전 활동 등에도 적극 나섰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개시하자 참전을 고려하는 쿠바 정부에 한인들과 공동 항일전선 구축을 설득하는 등 쿠바 한인사회를 항일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만들어갔다.
2. 독립운동 자금 지원 활동
임천택 지사는 1920년대 말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으로부터 재정 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편지를 받고, 쿠바 한인들을 규합해 식구 수대로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서 판돈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등 독립운동 자금 지원 활동에 앞장섰다.
쿠바 마탄사스 대한여자애국단을 창단한 김귀희 여사와 남편 임천택 지사(1937.7.26.)
※ 출처 :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대한인국민회에 의무금, 특별의연, 교육기금, 잡지 구독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저술한 ‘쿠바이민사’ 기록에 따르면 마탄사스 지방회는 의무금을 납부한 회원 30여 명이 1945년까지 약 25년 간 지방회 경상비‧교육비‧외교비 등으로 2만 달러 가까운 금액을 출연했고, 1937년부터 1944년까지 1,289달러의 기금을 모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납부했으며, 246달러를 모아 쿠바 아바나 소재 중국 은행을 통해 충칭 임시정부 김구 주석에게 송금하였다. (당시 한인들의 주급은 2-3달러에 불과)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1930년 2월부터 5월까지 지지 대회를 열었고, 쿠바 3개 지방회 소속 한인 100여명이 특별후원금 100달러를 모아서 보내기도 했다. 당시 시세로는 쌀 400가마니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한편, 임천택 지사는 부인 김귀희 여사가 단장을 맡았던 ‘대한여자애국단 마탄사스지부’의 고문으로도 활동하며 여성들의 독립자금 모금에도 일조했다.
당시 쿠바 동포들이 보낸 독립자금에 대해 김구 선생은 “동북 3성 250만명, 러시아 150만명, 일본 40~50만명 동포가 있으나 각각의 사정으로 기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나 미국 본토와 하와이, 멕시코, 쿠바의 1만여명의 동포는 비록 대다수가 노동자였지만 애국심은 강렬했다”고 ‘백범일지’에 기록하기도 했다.
3. 청년 교육 활동과 민족 정체성 수호

쿠바 마탄사스 엘볼로 농장에서 한인 2세 교육을 위해 세운 민성국어학교
※ 출처 : 한국사총설DB
교육을 민족운동의 핵심이라 믿고, 한인 2세를 위한 민족교육에 전념하기도 했다. 1925년부터 쿠바 최초 한인학교인 민성국어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이후 교장직을 맡아 수년간 학교 운영에 힘썼다.
1930년에는 재정난으로 운영이 중단됐던 진성국어학교를 재건하고, 야학교 청년학원을 설립해 역사와 언어, 문화를 가르치며 후세들에게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줬다. 독서와 강연, 토론을 진행해 한인 청년들을 미래의 독립국가 건설을 이끌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교육의 끈을 놓지 않았다.
4.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 및 쿠바 한인 이민사 기록
임천택 지사가 저술한 「쿠바이민사」(태평양주보사, 1954)
※ 출처 : 한국이민사박물관
언론인으로서도 그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1930년대부터 10여 년간 ‘신한민보’의 쿠바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쿠바 한인의 현실과 독립운동 소식을 미국과 한국에 알렸고, 193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한 것을 계기로, 임시정부의 ‘공보’를 비롯해 중국에서 발행된 ‘한민’, ‘한청’ 등의 잡지를 쿠바 한인사회에 배포하며 독립의 열망을 퍼뜨렸다.
1941년부터 ‘쿠바 재류동포의 이주 20년 역사’라는 연재를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1954년 ‘쿠바이민사’를 출간했다. 이 책은 쿠바 한인 이민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전개 과정을 정리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물로, 해외 한인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멕시코와 쿠바 이주 1세대 중에서도 특별히 국민회 조직, 독립운동 자금 모금, 민족 교육, 대외 선전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독립운동을 실천한 인물이다. 쿠바 한인 사회의 중추로서 공동체를 이끌었고, 독립운동이 약화하던 시기에도 변함없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공로를 기려 1997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고, 국가보훈부는 그를 2024년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바 있다.

2024년 12월 재외동포청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할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는 故임천택 지사의 손녀 노라 림 알론소씨
※ 출처 : 재외동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