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교육에도 관심이 깊어 1957 2대‘금강학원(일본 오사카 소재 한국학교)’이사장을 맡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간 운영자금을 사재로 지원했고, 오사카민단에 500만엔씩을 찬조하며 재일동포들의 권익 향상에 힘썼다.

 

 그의 모국 투자는 1961 박정희 전대통령이 경제개발 계획을 시행할 시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3 2 영등포 소재 한국 최대 면직공장인 ‘태창방직’을 100 달러에 인수해‘판본방직주식회사’를 세웠. 이는 최초의 재일동포의 대규모 모국 투자 사례로, 당시 우리나라 섬유 산업과 경제 발전에 기여를 했다.

 

  1967 ‘방림방적’으로 사명을 바꾸고, 1973 구미에 7천만 달러를 투자해 ‘윤성방적’을 새롭게 설립했다. 그러나 1974 1월‘윤성방적’에 화재가 발생했고, 1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사카모토방적’이 도산하고, 그의 사업은 급격히 기울었다.

 

  서갑호 회장은 일본, 홍콩, 필리핀 등을 오가며 재기를 위해 노력지만, 재기하지 못하고, 1976 62세의 나이로 별세.

 

우리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76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은 2013 신청사 개관 그의 아호를 역사관인‘동명관’을 대사관 설치했고, 2015년에는 그의 흉상을 제작해 대사관에 전시하는 그의 모국 기여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24 신축한 대사관저를 ‘동명재’로 명명한 있으며, 매년 11 1 ‘서갑호의 날’로 지정해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