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1985년 슈라이너 병원에 재직할 때는 한국에서 의료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을 직접 방문해 신체 장애아 100여 명을 자비로 하와이에 데려와 병원에서 무료로 수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으며 국내 의료 봉사 활동에도 다수 참여했다.

 

끊임없는 의학 연구와 후학 양성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스웨덴병원 임상병리실 조수로 근무하며 임상병리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세브란스 의대에서 인턴 수련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임상병리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펜실베이니아주 하놋 메디컬센터(Harnot Medical Center)에서 20개월간 병리학과 레지던트로 수련하며 부검을 300차례나 집도하면서 병리학적 지식을 쌓았다.

 

1966년 토론토대학 어린이병원연구소에서 칼슘대사 및 비타민D 분야의 대가인 도널드 프레이저 밑에서 선임연구원으로 3년 동안 있으면서 칼슘과 마그네슘 대사와 관계되는 각종 호르몬과의 상관관계 연구에 몰두해 1972년 토론토대학에서 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후 하와이에 이주해 하와이대학교 의대교수로 강단에 서면서 슈라이너 병원에서 골미네랄 연구실험실을 설치해 칼슘·마그네슘 대사와 연관된 호르몬의 임상적 적용과 각종 골대사 질환에 대한 원인 규명 및 치료 방법 연구를 했다.

 

하와이대학에 20여년간 근무하면서 하와이를 찾는 한국인 의학도들에게 미국 의학 현황도 소개했다. 또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모교의 후배 의학도들에게 진로 상담과 함께 의사로서의 인성 함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후학 육성에도 힘을 쏟았다. 한국 정형외과에서 골다공증 치료의 선구자인 장준섭 연세의대 명예교수, 한국 소아내분비학 발전에 기여한 김덕희 연세의대 명예교수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많은 명의가 서세모 박사를 사사(師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