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방 안에 모여 편지를 읽고 부둥켜안고 우는 가족들, 답장을 쓰기 위해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머니들, 말은 하지 못해도 눈물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모습들이 반복됐다. 이러한 전달 현장은 해방 이후 최초의 생사 확인이자, 이산의 고통을 위로하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전달한 편지는 3만 여통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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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들이 박노학 선생에게 보낸 편지와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명부 (출처 : 국가기록원) |
일본에서의 ‘사할린 동포 귀환운동’과 ‘박노학 명부’
그는 사할린 동포의 실체와 귀환의 염원을 입증하는 데 이 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를 명부화했는데, ‘박노학 명부’라 불리며 약 7천 명의 귀국 희망자가 수록돼 있다. 이 명부에는 국적·지역·귀국 희망 형태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이 명부는 한국 정부에 전달됐고, 한국 정부는 이를 일본 정부에 전달하면서 사할린 동포 귀환에 관한 구소련과의 협상에 나서도록 했다. 이후 ‘박노학 명부’는 귀환을 희망하는 사할린 동포의 존재를 부인하던 구소련의 입장을 반박하는 중요한 증거이자 일본과 한국의 정부 및 국민들에게 사할린 동포의 귀환 의지를 널리 알리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 사할린 동포들의 일본과 한국으로의 일시방문 및 영주귀국을 추진하는 대상을 우선적으로 입증하고 선별하는 기준이자 강제동원 피해를 규명하는 소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