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인천 수봉공원에 건립된 재일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박병헌 단장
재일동포사회의 리더로서 조국 발전 선도
박병헌은 이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핵심 인물이 됐다. 그가 총무국장이던 1970년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엑스포가 개최됐다. 민단은 ‘재일한국인만국박람회후원회’를 구성해 모금 운동 등 ‘EXPO 70’ 지원 사업을 전개했고, 박병헌 단장은 후원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지원사업의 기획과 진행에 이바지했다. 모금 운동에는 많은 재일동포가 호응해 모금 목표액 50만 달러를 넘어 한국관을 건립하고도 돈이 남을 정도인 70만 달러를 모금하는데 성공했다. 모금 운동 외에도 모국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본국가족 초청사업’을 병행해 박람회 기간 중 6차례, 총 9천 710명의 인원을 초청하기도 했다. 본국에서 별도로 다녀간 가족까지 보태면 총 1만 2천명이 넘는 인원이 일본을 방문했다.
1981년 9월 제24회 하계 올림픽의 서울 개최가 확정되자 민단을 중심으로 전 재일동포를 망라한 ‘서울올림픽재일한국인후원회’를 결성했다. 서울올림픽 후원의 관건은 기부금이었으나 큰 액수의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기부금 전액 면세 지정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한‧일의 정관계 인사를 거듭 찾아가 면세 교섭을 벌이고, 진정단을 만들어 일본 관료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이어진 교섭 활동 끝에 그는 1986년 일본 정부 대장성(大藏省)의 대신을 면담하는 등 일본의 기부금 면세 조치를 이끌어내는 데 역할을 했다. 면세 효과로 기부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525억원의 거액이 모였고, 이 기부금은 조직위에 기탁돼 올림픽 체조경기장, 수영경기장, 테니스경기장, 올림픽파크텔 등 조성에 쓰이며 88올림픽 성공 개최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