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해산은 곧 철수를 의미했지만 박 단장은 철수를 거부하고 당시 위관급 장교가 많이 부족했던 한국군 육군본부로부터 간부후보생 선발시험에 응시하라는 제안을 받고 시험에 합격해 육군 소위로 임관과 동시에 전투에 참여한다. 특히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전선을 안정시킨 계기가 된 용문산전투에서 소대장을 맡아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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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한국전 참전 중 고향에서

어머니와 상봉한 박병헌 단장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 총 642명 중 전사 52, 행방불명 83명 등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는 이후 재일민단 부단장 시절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자 위원으로 참여해 1979년 인천 수봉공원에 기념비를 건립에 동참하였고, 훗날 민단 중앙단장에 오른 뒤에는 참전동지 및 단원들과 힘을 합쳐 일본의 민단 중앙회관 앞에도 기념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