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청년 교육 활동과 민족 정체성 수호

교육을 민족운동의 핵심이라 믿고, 한인 2세를 위한 민족교육에 전념하기도 했다. 1925년부터 쿠바 최초 한인학교인 민성국어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이후 교장직을 맡아 수년간 학교 운영에 힘썼다.

 

1930년에는 재정난으로 운영이 중단됐던 진성국어학교를 재건하고, 야학교 청년학원을 설립해 역사와 언어, 문화를 가르치며 후세들에게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줬다. 독서와 강연, 토론을 진행해 한인 청년들을 미래의 독립국가 건설을 이끌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교육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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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마탄사스 엘볼로 농장에서 한인 2세 교육을 위해 세운 민성국어학교

※ 출처 : 한국사총설DB

 

4.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 및 쿠바 한인 이민사 기록

언론인으로서도 그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1930년대부터 10여 년간 ‘신한민보’의 쿠바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쿠바 한인의 현실과 독립운동 소식을 미국과 한국에 알렸고, 193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한 것을 계기로, 임시정부의 ‘공보’를 비롯해 중국에서 발행된 ‘한민’, ‘한청’ 등의 잡지를 쿠바 한인사회에 배포하며 독립의 열망을 퍼뜨렸다.

 

1941년부터 ‘쿠바 재류동포의 이주 20년 역사’라는 연재를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1954년 ‘쿠바이민사’를 출간했다. 이 책은 쿠바 한인 이민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전개 과정을 정리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물로, 해외 한인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